사법지원은 ‘배려’가 아니라 절차를 이해할 권리다

법원이나 수사기관을 찾는 순간은 대부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다.
사건을 겪은 직후이거나,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거나, 혹은 처음 겪는 절차 앞에서 긴장한 채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 절차들은 대부분 말을 빠르게 듣고, 질문을 즉시 이해하며,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설명이 길어질 여유는 없고,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절차의 위험

청각에 불편함이 있거나, 고령이거나, 긴장과 공포로 인해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말의 내용보다 분위기만 남는 순간이 생긴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 “괜히 다시 물어보면 귀찮아하겠지”
  • “이 정도는 내가 참아야 하는 문제겠지”
  • “지금은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알아보자”

하지만 사법 절차에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한 답변, 동의, 진술은 나중에 되돌리기 어렵다.

본인은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택할 기회 자체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가 된다.


이미 마련된 제도: 사법지원에 관한 행정예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법무부는 2025년 10월, 사법 절차 전반에서 제공되어야 할 지원 기준을 행정예규로 명확히 정리했다.

이 예규의 핵심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다.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듣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도움을 받으며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는 점이다.

즉, 사법지원은 특별히 배려를 요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 규정되어 있다.


사법지원은 어떤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중요한 점은, 이 지원이 장애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포괄한다.

  • 청각·시각 등 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 고령으로 인해 설명 이해가 어려운 경우
  • 심리적 긴장, 공포, 충격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 절차나 용어가 낯설어 이해에 반복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

즉, “공식적인 장애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절차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태인지가 기준이 된다.


실제로 제공될 수 있는 사법지원의 내용

사법지원은 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1. 의사소통 지원

  • 수어통역 또는 문자통역
  • 보청기, 음성 증폭기 등 보조기기
  • 설명을 더 천천히,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의 조정

2. 절차 진행 방식 조정

  • 질문 방식 조정
  • 충분한 설명 후 답변 기회 제공
  • 필요 시 휴식 시간 보장

3. 이동·접근성 지원

  • 청사 내 이동 보조
  • 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경우의 편의 제공

4. 법률 조력 연계

  •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경우
  •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한 무료 상담 또는 소송 지원

이러한 지원은
절차를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절차가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정에 해당한다.


이 지원을 어떻게 요청할 수 있는가 (초간단 체크)

사법지원은 복잡한 신청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 있다.

  • 조사나 재판 전, 민원실 또는 담당자에게 상황 설명
  • “설명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해가 어렵다”는 의사 표현
  • 필요 시, 의사소통 지원 요청 의사 명확히 전달

중요한 점은, 이를 요청하는 것이 무례하거나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제도적으로 인정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며

사법 절차에서의 권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듣고,
충분히 납득한 상태에서 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사법지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