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통보 또는 번역과 이해를 같다고 오해할까요?


정보를 전달했다는 사실과, 그 정보가 이해됐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통보는 말이나 글을 상대에게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키고, 번역은 그 형태를 다른 언어나 매체로 바꾸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해는 받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의미가 재구성되어, 그 사람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 단계를 자주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번역한다해서 우리는 모두 이해하는 걸까요?

법적통역제도 포스터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병원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의사는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말은 분명히 나왔고, 정보는 분명히 통보되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등 뒤에서 나온 그 말은,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소리의 진동으로 끝났을 뿐 이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통보는 일어났지만 이해는 일어나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성을 텍스트로 바꾸는 자동 자막, 수어를 문자로 옮기는 통역 — 형태를 바꾸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태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의료 용어를 그대로 받아적은 자막은 정확한 번역이지만, 그 상황의 긴급성이나 다음 행동까지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번역은 형태를 옮기는 일이고, 이해는 그 내용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간극은 소리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법원 판결문, 행정 공지, 약관과 계약서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관은 안내문을 발송했다는 사실로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지만, 그 문서를 받은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Hear. The unseen.’을 슬로건으로, 청력장애·난청 인식개선에서 시작한 카이나프로젝트가 복잡한 제도와 서류를 쉬운 언어로 바꾸는 작업으로 영역을 넓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리를 놓치는 것과 복잡한 문서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이해의 단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세 단계를 같다고 오해할까요. 아마 통보와 번역은 보내는 사람이 확인할 수 있지만, 이해는 받는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려는 노력 없이는, 우리는 늘 통보를 이해로 착각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통보, 번역, 이해는 어떻게 다른가요?
통보는 정보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말하고, 번역은 그 정보의 형태(언어나 매체)를 바꾸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해는 받는 사람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다음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Q. 카이나프로젝트는 왜 청력장애 이슈와 제도·서류 번역 작업을 함께 다루나요?
소리를 놓치는 것과 복잡한 문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형태만 다를 뿐, 정보가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들리지 않아도, 놓치지 않게 —Hear. The unseen.
-카이나프로젝트

Leave a Comment